티스토리 툴바


도시, 한적함이 키우는 밤거리의 황홀한 풍경


[일상/이야기] 2011/08/21 00:28 Posted by 오르™
가을을 재촉하는 비소리가 가늘고 차다. 김훈의 에세이집 <자전거 여행>(생각의 나무, 2000)을 빈둥거리며 읽다, 기어이 맥주를 사러 갔다. 마침 비도 왔고 맥주 외에는 적이 내 감정을 의탁할 곳도 없었다.

"무릇 사람에게는 그침이 있고 행함이 있다. 그침은 집에서 이루어지고 행함은 길에서 이루어진다. 맹자가 말하기를 인(仁)은 집안을 편하게 하고 의(義)는 길을 바르게 한다고 하였으니, 집과 길은 그 중요함이 같다. 길에는 본래 주인이 없어, 그 길을 가는 사람이 주인이다."

윗글은 길에 대한 신경준의 사유인 <도로고>에 나오는 말을 김훈이 인용한 말이다. 조선 성리학의 아들 신경준에게 길은 삶의 도덕적 가치와 상징들 사이로 뻗어나간 공적 개방성의 통로였다.


사진에는 비소리가 들리지 않는다. 사진의 숙명이다. 맥주를 사러 가는 길에 아이폰으로 한 컷 담았다. 편리한 세상이다. 활자로 저 적막감을 담으려 했다면, 과연 가능했을까 싶다. 메타세쿼이아 우거진 한적한 길은 이국적이다.

저 길을 걸을 때마다 나는 늘 낭만을 꿈꾼다. 저 길을 걸을 때, 나는 내가 저 길의 주인임을 알지 못한다. 저 길에도 본래 주인이야 있었겠지만, 주인은 따로 있다는 걸 직관하는 길이다.

도시의 밤거리는 언제나 황홀하다. 시골에서 자란 소년의 눈에는 밤이 자아내는, 목마른 자의 기갈에 물 한 모금 주지 않는 야속함조차도 황홀하게 보인다.

우리는 언제나 알 수 없는 풍경이 펼쳐지는 어둠의 저편에서 낯선 길을 보면서, 그 길은 가는 사람이 주인이라는 관념을 애써 만들어 위안을 삼는다. 특히, 관념론의 정점에서 서성이던 사람들이……

저 길을 보라. 저 길에는 고스란히 우리들의 서사가 묻어 있다. 저 길을 걷다 보면, 인간과 나무가, 삶과 자연이 결코 다르지 않다는 것을 실감한다. 오늘은 너무 슬프다. 밤 길을 걷는다는 것은 언제나 슬픈 일이다.

iPhone 에서 작성된 글입니다.
저작자 표시 비영리 변경 금지